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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에세이2012/05/17 19:41



미나가와 히로코는 <죽음의 샘>으로 처음 접했는데 환상과 사실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느낌에 매료되었다. 마지막 후기를 읽고 느꼈던 당혹스러움이란! 이어서 <베를린 밀랍인형관>을 읽었는데 이 또한 환상적인 문체와 아름다움으로 뒤범벅된 느낌에 푹 빠졌다.

<거꾸로 선 탑의 살인>과 <성녀의 섬>은 비록 환상적인 분위기는 덜했지만 독특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래서인지 미나가와 히로코는 환상과 탐미라는 두 축으로 각인되어 있다.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이런 분위기를 기대했다. 무엇보다 표지 그림이 <거꾸로 선 탑의 살인>과 같은 일러스트레이터(佳嶋)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장정이었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막상 읽고 난 후에는 미나가와 히로코의 냄새가 덜 느껴져서 아쉬웠다.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만큼 퀄리티 자체도 높고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지만 내가 기대한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베를린 밀랍 인형관> 정발 좀ㅠㅠ

<쌍두의 바빌론>도 사두었는데 요건 쌍생아 이야기라 다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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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hpiric
일본소설/에세이2012/05/11 23:11

아리스가와 아리스 <탐정, 청의 시대> / 올 스이리 2012 수록

(探偵、青の時代/有栖川有栖)


히무라 히데오의 풋풋한 대학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단편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길에서 우연히 대학시절 히무라의 지인을 만나 대학시절 히무라의 활약을 듣는다. 학과 친구들끼리 모여 학습회를 빙자한 술파티를 벌이는데 뒤늦게 도착한 히무라는 모임에 오는 도중에 만난 자전거 사고의 범인을 추리한다.


얼마 전에 읽은 <히무라 히데오에게 바치는 범죄>도 좀 평이한 추리로 가득했는데 아무래도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단편은 좀 약한 느낌이 있다. <일곱 사자의 속삭임>에서 아리스가와 아리스 단편을 읽고 재미없는 작가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읽지도 않았고...


<탐정, 청의 시대>도 탐정 '히무라 히데오'의 첫걸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기대에 못미치게 좀 평범하다. 대신 젊은 시절 히무라의 성격이 묻어나와서 꺅꺅거리며 읽었다(.. )


그나저나 아리스랑 히무라가 처음 만날 무렵 이야기(사회학부인 히무라가 법학부 수업을 청강하다 만남)는 언제 읽어도 귀엽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도 풋풋한 청춘이 느껴져서 좋지만 히무라 시리즈 단짝 콤비도 좋암~


미나토 가나에 <망향, 꿈의 나라> / 올 스이리 2012 수록

(望郷、夢の国/湊かなえ)


왜 올 스이리에 수록되었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추리와는 상관없지 않나 할 정도.

시대와 동떨어진 가풍 속에서 군림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억압 속에서 죽어지내는 어머니, 그리고 나


어린 시절 동급생들이 드림랜드-아마도 디즈니 랜드?-를 갈 때 할머니의 역린을 건드릴까봐 시도조차 못해봤던 어린시절. 그런 추억과 원망이 뒤섞인 시절을 살아 온 여자의 회고록. 


미나토 가나에는 글솜씨는 나쁘지 않은데 소재가 언제나 상투적이다. 


시노다 세츠코 <심해의 EEL> / 단편집 はぐれ猿は熱帯雨林の夢を見るか수록


<심해의 EEL>은 공상과 풍자가 뒤섞인 단편이다. 바닷가에서 장어 무리를 낚은 어부들은 자신들이 잡은 고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한다. 길이는 2미터가 넘고 눈에서는 이상한 금속광선을 뿜어내는 장어 떼. 


외도(外道)라고 부르는 변종이지만 유명 초밥 체인 회사에서 헐값으로 사들인다. 이윽고 변종 장어를 먹은 사람들은 복통을 호소하고 장어는 전량 폐기처분될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장어를 사들인 초밥 체인은 변종 장어를 잘게 찟고 색소를 버무려 고급 식재료로 만든다. 한편, 변종 장어의 체내에서 희귀 금속인 팔라듐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나'는 장어를 선점하려 동분서주하고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시노다 세츠코는 <가상의례>에서 사이비 종교를 다뤘는데 이번에는 식품가공업, 불량 식품, 자원선점 등 사회풍자적 요소를 무겁지 않게 잘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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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hpiric
일본소설/에세이2012/05/11 22:49

프롤로그


전등 아래 작업대 위로 권총 네 자루가 내던져져 있다. 콜트 파이슨 4인치가 한 자루, 스미스&웨슨 센테니얼이 한 자루. 라이센스를 얻어 생산한 토카레프 한 자루, 오래된 콜트 거버먼트 자동권총 한 자루. 파이슨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천 발 이상 실탄을 쏜 총이다. 총신 속은 갈색으로 꺼멓고 스미스&웨슨은 나사가 풀렸으며 토카레프는 슬라이드와 프레임 사이가 헐겁다.


권총에는 제각기 주문 내용이 적힌 메모지가 붙었다. 스미스&웨슨과 토카레프는 배럴을 깎아 바로 잡아주면 끝. 콜트 45는 작동불량을 일으켜 전체적인 점검을, 파이슨에 고무줄로 묶인 메모는 트리거 풀을 가볍게 해달라는 주문이다. 악필. 남자는 메모를 쭉 찢고 파이슨을 손에 들었다. 손으로 요크 스크류를 뺀 뒤 실린더를 풀고 나사로 죈 그립과 사이드 플레이트를 제거한 후 해머 블록이 작동하는 모양을 보기 위해 트리거를 가볍게 당겼다. 싱글 액션으로 1.7~8킬로. 더블 액션으로 5킬로에 못 미치는 감촉. 정상적인 순정품 파이슨은 이런 맛이려나. 동급인 쿠거나 사이드 와인더는 조금 더 가볍긴 하지만 가볍게 한다해도 그 정도다. 해머의 코킹 노치와 트리거 리프의 맞물림을 살펴보고 시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후 얼마나 깍아내야 할 지 머릿속으로 대강 가늠해본다. 파이슨을 옆으로 밀쳐두고 이번에는 고철이나 다름없는 콜트 오토매틱을 집어 올렸다.


구식 오토매틱은 슬라이드가 낡아 기름을 쳐야만 프레임에서 빠졌다. 배럴 앞을 막은 배럴 부싱과 리코일 스프링, 가이드를 잡아 빼서 슬라이드를 풀고 배럴을 꺼내어 한순간 알몸이 된 프레임을 위에서 들여다 보았다. 핀으로 이어진 기관부 부품을 하나씩 핀셋으로 집어 올린다. 해머와 맞물린 시어가 파손되어 사라졌다. 그 외에도 탈포기가 마모된 곳이 한 군데. 볼트 스톱이 망가진 곳이 한 군데, 나사가 풀린 곳이 두 군데. 녹슮. 오염. 시어는 새로 갈아야겠지.


손댈 부분을 확인한 후 옆에 둔 위스키를 입에 머금고 남자는 다시금 완전 분해에 착수했다. 핀과 볼트를 빼기 전 하나씩 차근차근 기름을 쳤다. 밤 공기는 아직 차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누군가가 바깥 도로를 걸어가는지 구두소리가 멈추지않고 그대로 멀어져 갔다. 적막. 남자는 권총을 옆에 두고 작업대 서랍을 연다. 서랍 속에서 오랫동안 잠자던 갈색 방부지 뭉치를 꺼냈다.


오래 전 빛바랜 사진이 한 장 나왔다. 스물 두셋 정도의 맑고 서늘한 남자의 얼굴이 찍혔다. 짧게 깍은 머리에 반다나를 두르고 흰 셔츠를 입은 어깨에 자동소총과 가방을 메고 있다. 누래진 인화지 뒷면에 볼펜으로 두보의 시가 두 줄. 멋드러진 필체는 사진 속 남자가 직접 쓴 글자다.


不可久留豺虎亂

南方實有未招魂


춘추전국 시대 고향에 돌아갈 기약 없이 동란이 계속되는 남방 어딘가에 머무네, 라는 의미의 시구였다. 남자는 이미 수백 번도 더 바라본 문자를 다시금 바라보고, 입으로 소리내어 중얼거린다.


南方實有未招魂

난펑 쉬 여어 웨이 쩌훤


단숨에 마신 위스키에 남자는 목이 메어 울다가 마침내 혼자 키들거리며 웃었다.



나이트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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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hpiric
일본소설/에세이2012/03/16 23:37


2011년도 본격 미스터리 10위에 든데다 표지가 특이해서 눈여겨 봤는데 모처에서 건졌다.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도 있었는데 이쪽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
 

애초에 읽을 생각이 별로 없던 터라 내용을 전혀 몰랐는데 '인습에 지배받는 마을'이 배경이다. 내가 꽤 좋아하는 설정이잖아;;;; 랄까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띠지에 미소녀 탐정 등장! 이라고 되어있는 만큼 살짝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만 시장 선점효과라고나 할까, 만약 번역판이 나온다면 묶어서 생각하는 이가 많지 않을까.

고토사키 마을은 옛부터 스가루 님이라는 신을 모시는데, 모계를 따라 고토사키 가문의 장녀가 대대로 스가루 님 역할을 이어받는다. 차기 스가루 님을 맡을 후계자 고토사키 하루나가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되면서 마을에는 잇따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자체도 꽤 흥미진진하지만 주인공 미사사기 미카게가 미소녀 탐정-게다가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널 체포하겠어!"라는 설정이 좀 모에(.. )-에 '츤츤'대는 성격이라 마음에 든다. 어쩌다가 미카게의 수습 조수를 맡은 시즈마에게도 좀 깨는 배경이 있음. 시즈마는 자꾸 세키구치가 떠오를 정도로 약간 얼빠진 타입이라 미카게와 균형이 참 잘 맞다(.. )


...라고 속았다. 마지막 30여페이지 남을 때까지도 범인을 미스리드한다. 줄곧 가즈오를 범인으로 점찍었는데 이 역시 작가가 유도한 결과였다. 솔까말, 뿅.뿅.이.범.인.이라니!!! 이쯤되면 소설 분위기가 내내 라노베 느낌이었던 것 마저 작가가 의도한 걸까 의심스럽다;;; 3/4 지점까지도 평범한 요코미조 세이시 풍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다가 된통 당했다. 마지막 반전은 두고두고 기억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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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hpiric
일본소설/에세이2012/03/16 23:32



요릭의 향연에서 색기 만땅 캐릭터에 발려서 사왔던 <나비사냥>
책장에 좀 묵혀둔 터라 꺼내들었는데 단편집이다. 그것도 시리즈 2편 (┓-) 뭐, 그래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주인공인 사쿠라바는 조사원. 본인 말에 따르면 치정 관계 뒷조사 전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많다. 제목인 나비사냥(蝶狩り)에서 말하는 나비는 이꽃 저꽃 허무하게 날아다니는 여자들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쿨해서 여자들은 자신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춘다. 

사실 신경쓰이는 건 등장인물 쪽. 사쿠라바는 사라진 여자들에게 아련한 애수를 품는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텅빈 여자들. 그녀들이 뭘 생각했을까 끊임없이 되뇌이는 사쿠라바는 은근히 착하다고 할까. 사쿠라바가 조사원 사무실을 나눠쓰고 있는(라기 보다는 사쿠라바 쪽이 더부살이 하고 있다) 히바야시는 고급 수트를 입고 좋은 음식에 여자들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도련님. 마음이 약해 사라진 여자들을 내버려두지 못하는 사쿠라바에게 적당히 브레이크도 걸어주고,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찾아다 주며... 돌봐주고 있다ㅋㅋ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이 하나같이 건조함;;;
1. 나비사냥 2. 바비타운 3. 신주쿠 블랙 배스 4. 파트타임 러버 5. 다이아몬드 하트 6. 모든 것은 있던 자리로

차라리 단편마다 다른 스토리로 구성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중간부터 사쿠라바가 키리에의 행방을 뒤쫓는데 솔직히 별로였다. 그래도 요릭에서 봤던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사쿠라바 성격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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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hpiric